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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TS
작성일시 : 2010-06-04
조회 : 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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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사역한 프랭클린 올링거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인쇄소를 설립하며 문서사역에 힘썼습니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잃었지만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는데요. 이 올링거 선교사의 후손들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고성은기잡니다. ------------------------------------------------------------------- 프랭클린 올링거 선교사는 우리나라 문서선교와 출판문화 근대화의 선구잡니다. 17년동안 중국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요청으로 1888년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6년동안 배재학교 교사로 사역한 올링거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인쇄소를 설립하고 성서와 전도문서를 출간했으며, 국내 최초로 영문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올링거 선교사는 한국선교 6년째인 1893년 두 자녀를 편도선염으로 한꺼번에 잃게 됩니다. 올링거 선교사의 12살짜리 아들 버티와 9살짜리 딸 윌리는 조선에서 사망한 최초의 서양 어린이입니다. INT 강병훈 이사장 /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올링거 선교사와 그의 가족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아들 버티와 딸 윌리의 묘소는 유족들과의 이야기, 역사자료와 고증을 통해 양화진묘역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INT 데이비드 올링거 / 올링거 선교사 4대후손 사진, 기록을 통해서는 증조할아버지(올링거선교사)의 사역을 잘 몰랐는데 한국교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희생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올링거 선교사를 통해 자손들이 얼마나 영광받는지 후손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두 자녀를 잃었지만 끝까지 한국을 생각했던 올링거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 이들의 희생과 사랑이 기념비에 새겨져 후대까지 남았습니다. CTS 고성은입니다. DVE 올링거 선교사를 기리며 프랭클린 올링거 (1845-1919)--------------장소자막 인쇄소 설립해 전도문서 출간 편도선염으로 자녀 둘 잃어 INT 강병훈 이사장 /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올링거선교사 기념비 제막식 / 4일, 양화진 INT 데이비드 올링거 / 올링거 선교사 4대후손 사진, 기록을 통해서는 증조할아버지(올링거선교사)의 사역을 잘 몰랐는데 한국교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희생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올링거 선교사를 통해 자손들이 얼마나 영광받는지 후손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영상취재 손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