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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TS
작성일시 : 2021-05-04
조회 : 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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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교회 130년 아카이브. 오늘은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양평지역의 선교기지 역할을 감당하며 전도와 교회 개척운동에 앞장선 교회가 있는데요.
앵커: 100년이 넘는 선교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상심리교회를 소개해 드립니다. 구효완 기자입니다.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리하고 있는 상심리교회.
1903년, 성경을 팔며 복음을 전하는 권서가상심리 마을에 방문하였고, 성경을 읽고 복음을 받아들인 차상진, 배운길 등 7명의 성도들은 헌금을 모아 1907년, 8평의 초가 예배당을 마련합니다.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곽안련 선교사는 이 소식을 듣고 전도인과 함께 양평으로 가게 됩니다. 1910년, 곽안련 선교사는 장로 장립과 당회를 조직하며 상심리교회를 선교기지로 삼고 양평지역 선교에 박차를 가합니다.
상심리교회는 묘곡교회, 문호교회, 양평읍교회, 고읍교회 등 어려운 교회를 돕거나 설립하는 등 양평지역의 어머니교회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상심리교회 100년사를 집필한 김대수 장로는 “상심리교회 선교의 원동력은 성도들의 열정”이라며, “믿음의 선배들의 영적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INT 김대수 장로 / 상심리교회
100년사를 보니까 중심인물이 배운 길 장로님이었어요 이 분이 성령이 충만해 전도를 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그런 열정이 이 교회가 남을 돕게 한 거 같아요 고읍교회가 불타 망가졌을 때도 자신의 소를 팔아서 도와줬고 두 딸이 시집간 곳에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워주신 분이에요 이 정도 되는 중심인물이 교회에 있다 보니까 다른 교회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심리교회는 3.1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양평 옥천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발생할 당시 주일학교 교사였던 신우균 조사는 4,000여명이나 되는 군중을 주도하며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졌는데1975년경에는 마을에서 술을 팔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강 나루터엔 선상술집이 유행했지만 교회의 저지로 이를 금하였고 마을 주민 90%가 교회에 오며 상심리는 예수마을로 불리게 됐습니다.
INT 김종한 원로장로 / 상심리교회
마을 분들이 거의 다 교회에 나오다 보니까 술을 먹는 사람이 더러 있었지만 파는 집은 있어선 안 되겠다며 교회에서 결의하고 술을 파는 것을 금하면서 술이 없는 마을로 오늘까지 이 마을엔 술을 파는 집이 없고 8-90% 마을 주민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2005년 100주년을 맞은 상심리교회는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복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올해 부임한 박지환 목사는 어머니 은혜를 생각하며 베푸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전합니다.
INT 박지환 목사 / 상심리교회
상심리교회가 지역사회 마을과 양평을 위해 많은 귀한 일을 해왔는데 성도님들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성령 충만해서 마을과 이웃나라와 통일, 다음세대를 위해 즐겁게 헌신하고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제가 소망하는 우리교회 비전입니다
116년의 역사 속에 양평에 뿌려온 복음의 씨앗들이 지나온 백년을 뛰어넘어 복음전파에 앞장서는 상심리교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CTS뉴스 구효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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